희귀 도서에 인생을 건 사람들: 유명 컬렉터들의 수집 이야기

 

 

 

세계 최고가 도서 구매자, 빌 게이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 수집'

희귀 도서 수집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역사적 지식과 창의성에 대한 갈망을 책을 통해 구현해내는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가 1994년에 경매에서 무려 3,080만 달러(현재가치 약 4,500만 달러)를 주고 낙찰받은 도서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필 노트인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입니다.

이 노트는 물의 흐름, 별의 움직임, 공기 중 입자의 운동 등 다빈치의 과학적 관찰을 기록한 72페이지 분량의 수기이며, 16세기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게이츠는 이 노트를 단지 금고에 넣지 않았습니다. 디지털화하여 전 세계 박물관과 과학 교육기관에 전시하며 ‘지식의 공유’라는 철학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희귀 도서를 ‘보관’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보는 그의 태도는 수많은 컬렉터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희귀 도서 수집이 단지 부의 과시가 아님을 증명해냈습니다.

 

 

‘셜록 홈즈’에 빠진 CEO, 제이슨 조이의 전설적인 수집

미국의 스타트업 투자자이자 CEO인 **제이슨 조이(Jason Joy)**는 셜록 홈즈 시리즈에 매료되어 관련된 모든 희귀 도서를 수집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아서 코난 도일의 초판본은 물론, 작가 사인본, 해외 최초 번역본, 홈즈 등장 이전에 영감을 준 미스터리 단편집까지 모두 구비해 ‘셜록 홈즈 컬렉션’을 완성했습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은 1887년에 출판된 홈즈 최초 등장작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초판본으로, 당시 미국판 1쇄는 단 100권도 인쇄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책이 극히 드뭅니다.

조이는 수집을 단순히 취미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역사 복원 프로젝트처럼 접근했습니다. 10년간 전 세계 고서점과 박람회, 온라인 경매 플랫폼을 돌며 단서를 수집했고, 어떤 책은 3년에 걸친 설득 끝에 개인 소장자로부터 매입했습니다. 그는 “한 권의 책이 시간과 공간을 통과해 인간의 상상력과 만나면, 단순한 물건 이상의 존재가 된다”고 말하며, 수집이야말로 창조적 지적 활동이라 강조했습니다.

 

 

대학 도서관의 숨은 영웅, 일본의 스기야마 료이치 컬렉션

희귀 도서 컬렉팅은 기업인이나 투자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일본의 **스기야마 료이치(杉山良一)**는 국립대학 도서관 직원 출신으로, 근현대 아시아문학과 독립운동 관련 고서 수집에 평생을 바친 컬렉터입니다. 그는 책을 사기 위해 월급의 절반 이상을 투자했고, 자녀 유학 자금 일부도 책값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헌신적인 수집가였습니다.

그가 수집한 도서 중 상당수는 조선총독부 발행 문서, 일제 검열판 이전 시집 초판, 한국어 교육 교본의 초기 판본 등 역사적 가치를 지닌 희귀 자료들이었고, 현재 도쿄대, 큐슈대, 한국 학술기관에 기증되어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의 컬렉션은 단지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식민사와 민족 문화의 맥락을 복원할 수 있다는 학문적 중요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스기야마는 책장 앞에서 “이 책은 잊힌 기억을 깨우는 도구”라고 말했으며, 그의 수집은 개인을 넘어 공공 지식 유산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여성 컬렉터의 힘, 메리 하이드의 셰익스피어 컬렉션

희귀 도서 수집 분야는 오랜 시간 남성 중심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그 구도를 깨뜨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미국의 **메리 하이드(Mary Hyde)**입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주요 작품의 초판본을 포함하여 수백 권의 극초기 인쇄본을 수집했으며, 특히 1623년 셰익스피어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소장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퍼스트 폴리오는 셰익스피어 사후 그의 동료들이 편집한 첫 공식 작품집으로, 현재 존재하는 750부 중 200부도 채 남아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리는 희귀 도서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문학적 이해와 고문서 해독 능력까지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도서 수집과 더불어 관련 서간, 작가 연설문, 출판 기록까지 함께 모아 도서 컬렉션의 문맥을 보완했고, 수많은 도서를 하버드대학교에 기증하며 도서관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메리 하이드는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담긴 시간의 흔적”이라 말했으며, 그녀의 수집 철학은 현재 많은 여성 컬렉터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